인턴단상

대충 이 생활도 절반이 지났다.

1. 턴이 거듭될수록 엄마가 어릴때부터 나한테 너 성격 그래서 사회생활 하겠니라고 했던 말이 생각남. 초반의 나름 친절하게 군말없이 콜 받았던 나는 낯을 가리느라 그랬던 것이 틀림없다. 일이 쌓일수록 대꾸가 거칠어지는 게 느껴짐. 뻘콜이 뭔지 알게되면서 더 방어적인 성격이 되었다. 물론 수많은 콜들 사이에서도 항상 상냥한 선생님이 있겠지만 그러려면 보살이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난 이번 삶에서 공덕을 쌓는 일은 포기해야겠다. 내 팬더의 꿈도 안녕. 다음 생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의사는 안하는 걸로. 근데 그러려면 공덕을 앃아야 하나.

2. 전공의 특별법으로 정해진 주당 80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턴이 두명인 과는 퐁당퐁당으로도 못맞춰서 주중 낮에 오프를 내보내야한다. 물론 낮에 오프를 한명이 나가면 나머지 한명에게는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콜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한명이 휴가를 가거나 오프를 나간다고 해서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
비슷한 예로 두명 또는 세명 도는 과에서 한명이 정당한 권리를 찾아 휴가를 떠나면 남은 사람은 그 휴가기간 동안 병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혼자 풀당이다. 물론 휴가 간 사람도 휴가 앞뒤로 밀린 당직을 서느라 죽어난다. 이럴 거면 휴가를 안가는게 낫겠다며 말할 정도다. 이걸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걸 노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병원은 정말 적은 인력으로 사람을 한계까지 쥐어짜지 않으면 안돌아가는 걸까.

3.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사무직의 근무시간은 주당 40시간이다. 물론 앞뒤 야근붙고 하다보면 다들 저걸 초과해서 일하고 있긴 하겠지만. 주말에는 쉬고 밤에는 자는게 일반적인 직업의 형태다. 물론 의료의 특성상 낮밤 평일 주말 상관없이 일이 터지긴 하지만 모든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낮에도 일하는 건 아니잖이. 보통은 밤에 일하면 낮에는 좀 잔다. 주말에 일하면 주중에 쉬는 날이 있거나.

4. 일주일에 120-140시간 근무하던걸 80시간으로 줄여주다니 진짜 대단해! 너넨 옛날에 인턴 돌아봤어야 한다며 요즘 정도면 진짜 많이 좋아진거다 이 정도로 감지덕지 하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의문이 든다.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그 중에 140시간 일하면 남은 24시간으로 일주일간 잠도 자고 씻고 먹고 해야한다. 의대간 애들이 다른 애들과 다들 연락이 끊기면서 점점 사회성이 없어지는 이유가 있다.
다들 저 어디서 갖혀서 농장일 하던 노예 출신인가. 나는 없는 집안 살림에도 그렇겐 안컸는데.
오프나가서 뭐 할거야. 잠이나 잘거 아니냐. 그러면 병원에서 배우고 있는 게 낫지라는 말도 들어보았다. ...인턴잡의 약 80퍼센트 가량은 단순 노동이다. 교육적 목표와는 무관하다.

4. 사명감 좋은 단어다. 의사로써 물론 있어야 하는 것도 맞다. 근데 그게 내 목숨을 갈아야만 가능하다면 그건 좀 의문이다. 의사 생활도 사명감 있는 훌륭한 진료도 나랑 환자 둘다 살아있아야 가능하다. 하루 두세시간 그것도 콜 받느라 끊어자서 잔 것 같지도 않은 의사가 수술방에서 스크럽을 선다고 생각하면 나도 싫다.

5. 다른 이야기인데 당직표 보라고 만든거니까 좀 보고 전화주면 좋겠다. 계속 우려먹는 이야기긴 하지만 인턴 초기에 응급실에서 5분 전까지 근무복이다가 사복으로 갈아입고 뭔가 일하고 있는 간호사에게 마스크 어디있냐고 물었다가 지금 사복인 거 안보이냐 나 근무중 아니다라는 매몰차게 혼내는 말만 듣고 사과하고 결국 마스크 위치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물어 알아낸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사복입고 있는 간호사에게는 절대 아는 척 하지 않는다. 혼날까봐.

6. 근데 난 정당한 오프인데도 전화가 계속 울린다. 병원에서 병동 한가운데 서 있는 것도 아닌데 나한테 전화가 온다. 계속 온다. 분명 당직표에 있는 내 번호를 보고 전화하는 걸텐데 왜 당직표에 오프라고 적혀있는 건 안보이는 걸까. 이제는 아예 무음으로 돌려놓고 무시하지만 초기에는 받아서 오프라고 말해줬는데 그러면 간호사가 되물었다. 선생님 왜 오프에요? 근무시간이잖아요.
... 오프라서 오프라고 말했는데 나한테 왜 오프냐고 물으면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인턴 둘 중에 하나가 응급으로 수술방 들어가고 나는 오프인데 전화가 와서 다른 한명이 안받는다며 나한테 지금 당장 와서 컬처를 해달라고 한다. 오프라고 알려줬더니 그럼 다른 선생님도 안받는데 어떡해요? 선생님이 와서 해줘요.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러니까 왜? 선생님은 듀티 끝나고 오프라서 집에 갔는데 라인 잡다 실패했으니까 얼른 와서 해달라고 하면 라인 잡으러 나오나요? 내가 병원 되돌아가서 컬처하는 것 보다 근무중인 애가 수술방에서 나오는게 더 빠르겠는데.

7. 밤낮없이 자기몸 불살라가며 애쓰던 선배 의사들은 대단한 사람들인 건 맞다. 근데 그게 바람직한 일인가 하면 잘 모르겠다. 환자와 나 둘 다에게 안좋은 일인 것 같다.

8. 일을 하다보면 아 이건 좀 싶은 일들이 위에서 내려온다. 진짜 단순 심부름인데 자기가 가기 귀찮아서 시킨다던가 레지던트 잡인데도 불구하고 시간 소모가 길다거나 귀찮아서 넘어온다던가 하는 것들이 있다. 내가 나중에 그럴까봐 좀 걱정이다. 근묵자흑이랬거늘.

9. 이 와중에도 진짜 별거 아닌 일인데 감사를 표하는 환자나 보호자를 보면 몸둘바를 모르겠다.

by Gullveig | 2016/08/07 23:12 | 트랙백 | 덧글(1)

최근 일련의 일들에 대하여

작년부터 올해까지 학교가 뒤숭숭하다. 내가 대학 졸업할 때 쯤부터 여기저기서 문제가 되던 컨닝사건들이 이제는 지금 있는 학교까지 뒤흔들고 있다. 걸린 이들의 변명은 다양하다. 그러나 결국은 한가지 결론으로 귀착된다. 너도 하지 않았느냐.
사건을 찾아낸 이들은 학번내 자체적인 징계를 통해 이 사건을 묻어둔다. 분해하면서도 교수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학번내 분위기 등을 언급하던 이전과는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걔네 집안이 대단하잖아요.
발각된 자와 발각한 자의 대답들을 듣는 순간 굉장히 화가 나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상아탑이 무너진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취업, 자격증을 위한 학원 취급을 받고 있는 학교라지만 어떻게 저런 대답들이 나올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아야 한다. 법과 기존 질서 앞에서 잘못의 정도가 아닌 지위의 고하와 부의 정도는 고려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내가 가진 기본적인 원칙과 근간들이 여기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아무리 사회가 어지럽다 하더라도 학교 안에서만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오히려 여기서 시작되고 있었다.
어릴 때는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잘못된건 고쳐져 나갈거라고 믿고 있던 때도 있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고 옆에서 지켜볼 때 마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앞선 이들의 잘못을 보고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게 과연 옳은 일인지 의심하지 않고 순응하는 그 모습이 슬프다. 별로다.

by Gullveig | 2015/11/06 10:37 | 그 외 잡담 | 덧글(0)

미국 대장 & 호텔 컨시어지

어제 밤에 급 영화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지고 있는 각종 멤버쉽들 포인트 탈탈 털어서 오전에 두개 땡기고 옴.
실습 돌면서 그나마 장점인건 아침에 잘 일어나게 되었다는 점인 듯.
오늘도 7시반, 10시 반 영화 끊었는데 어제 늦게 잤는데도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보고 왔다.

캡틴 아메리카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완전 상반된 영화지만 둘다 재밌었음.
캡틴 아메리카는 히어로물 답게 쏟아붓는 돈과, CG와 잘생긴 미국 대장과 빌런으로 눈이 즐거운 영화였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진짜 색감이 완전 화사한 데다가 랄프 파인즈!!!!!!!!!미남!!!!!!!!!!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크리스 에반스,스칼렛 요한슨,사무엘 L. 잭슨 / 안소니 루소,조 루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틸다 스윈튼,랄프 파인즈,애드리안 브로디 / 웨스 앤더슨





by Gullveig | 2014/04/06 22:58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