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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리뷰]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이권우 지음 / 그린비




속독하는 사람의 변

  나는 글자를 빨리 읽는 편이다. 뭐라고 설명해야 정확할지는 모르겠는데, 줄과 줄을 뛰어 넘어가면서, 적당히 필요한 단어만 걸러내 내용을 파악하는 편이라고 해야하나, 뭐 그렇다. 하지만 차마 '책'을 빨리 읽는 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활자를 읽기는 빨리 읽는데 정작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책을 읽었다면 뭐라도 남는게 있어야 하는게 정상인데, 마지막 마침표를 읽고 나면 소설의 경우에는 '재미없다/재미있다', 비소설의 경우에는 '이게 뭔소리냐/이런건가?' 하는 정도밖에 남질 않는다. 언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그 동안의 읽었던 기억들을 거슬러 올라가 봤더니 아무래도 고등학교 시절 쯤이었던 것 같다. 그 무렵에 뭐가 있었나 다시 생각해 봤는데, 수능과 텝스용으로 장착한 '속독'이라는 기능이 있더라.
  시험이라는게 한정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다 보니 선생님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대충 훑어읽으며 중요한 단어를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내용을 대략 파악해서 문제를 해치우고, 세세한 내용을 묻는 경우에는 다시 그 단어가 나온 곳으로 찾아 올라가 다시 읽는 그런 읽기 방법이었다. 나는 제한된 시간내에 일단 대충 읽어 줄거리를 파악하는데는 재주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 용돈이란 용돈은 다 털어 만화책과 소설책을 빌려서 정해진 기일도 아니고 빌린 바로 그 다음날까지 다 읽고 갖다주는 생활이 몸에 배인 데다가, 그 책들은 그다지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없는 킬링타임용 책들이었다 보니 훑어읽는 데 있어서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그게 문제 풀기의 요령들과 결합되어 나는 언어와 외국어를 풀때면 시간이 항상 남아돌았었다. 남들 지문 한번 읽을때 두번 읽고 문제 풀고도 시간이 남았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했다. 대학을 입학하고 나니 저 능력은 필요가 없는거다. 객관식 시험은 그 이후로 거의 칠 일이 없었으니까. 전공이든 교양이든 읽고, 잘근잘근 씹어 비판하고, 분해되면 삼키라는데 나는 그게 참 어렵더라. 뭘 하려면 제대로 깊숙하게 읽고 생각해야 하는데 내 몸에 배인 버릇은 그게 아니거든. 정해진 분량을 읽고 뒤돌아서면 기억이 안나 다시 읽지만, 이번에는 읽었던 내용이라고 더 빨리 훑어버리고 넘겨버리니 이건 뭐 씹을려고 해도 씹을 게 없다. 이미 그냥 덩어리 째로 후룩 삼켜버렸거든. 그리고 제대로 씹지 않은 것은 탈을 유발하기 마련. 내 교양 성적들은 덕분에 처참하다. 전공이라고 별 다를 바는 없다. 심지어 요즘의 나는 스스로 난독증을 의심하고 있는 처지다. 난 항상 모의고사 치면 언어는 1등급이었는데도! 이럴수가! - 물론 글재주는 옛날부터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므로 이 글의 엉성함을 굳이 지적해주진 않아도 된다. 읽기에 관해서만 이야기 하자.

  그런데 저자가 가장 강조해서 반대하는 책읽기의 방법이 바로 속독이다. 빨리 하는 것은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일 뿐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옆에 앉아서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것 같더라. 사실대로 고백하건데, 나는 이 책도 리뷰 기간 내에 읽어야한다고 속독으로 읽어내리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실은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좀 심드렁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옛날 옛적 부터 어디선가 들어본 말들 같았으니까. 아무래도 책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사 볼 거라는 걸 예상했는지 고사들과 함께 풀어서 써져 있는 글들은 조금 어려우면 못 읽는 요즘의 나에게도 쉽게 읽혀졌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글줄 꽤나 읽었다는 느낌이 물씬나는 저자의 분위기가 내 못된 심보에 불을 지펴 삐딱한 자세로 읽게 만들더라. 나도 옛날에는 독서하면 그럭저럭 주위에서 유명한 소녀였는데 이 꼴이 뭔가 싶어서. 그런데 딱 저 속독 부분에서 아차 싶은 거다. 왜 그런거 있잖나. 자신도 은연 중에 느끼고 있는 문제점인데 남이 찔러주면 괜히 더 찔리는 거. 이 경우 반응은 버럭하고 화내고 책을 덮어버리거나, 매우 찔려하면서 나머지 말을 경청하는 정도가 나올 수 있는데 이번에는 후자였다. 저자는 계속해서 책읽기의 왕도는 없지만 그래도 팁을 좀 주자면 느리게 읽고, 깊게 읽고, 겹쳐 읽으라 말하는데 이거 왠지 내가 장착해야 할 스킬 같다며 끄덕거리고 마저 읽었던 것이다.
  애시당초 이 책을 읽겠다고 한 이유로는 어떻게, 그리고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겠다는 것이었는데, 글쎄, 내가 그 해답을 찾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충분하게 고민을 한 건지도 잘 모르겠고. 일단 이 책 자체도 속독으로 읽어내려갔으니. 하지만 나의 책읽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정도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고.

  어째 다 쓰고 나니 정작 리뷰라고 써 내려간 것은 내 과거 이야기 뿐이라는 점이 조금 부끄럽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2부 11단원, '독후감, 책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을 나름 반영한 독후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이 이런 면에서 이상하고, 저런 면은 고쳐야 하고, 이건 구구절절하게 다 맞는 소리다! 라고 분석하고 쓸만큼의 능력은 없다. 사실 그 정도가 됐으면 이 책을 신청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과거 한토막을 풀어놓는 것도 훌륭한 독후감이라고 하니, 이것도 그럭저럭 리뷰의 탈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렛츠리뷰

by Gullveig | 2008/10/29 01:04 | 수다의 발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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